좌절과 상실, 그리고 창작이라는 구원.
유년 시절부터 20대와 30대까지, 힘듦이나 어려움, 결핍이 없지는 않았지만 삶은 비교적 순탄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던 것 같다.
그러다 30대 후반, 처음으로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맞이했다.
40대 초반에 또 한 번 큰 상실을 겪었고, 최근 40대 후반에 다시 커다란 좌절과 마주했다.
돌아보면 내 삶을 크게 뒤흔든 경험들은 모두 깊이 사랑했던 존재의 죽음과 떠나보냄에 관한 것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했던 존재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남겨졌다. 죽을 수 없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사람으로.
커다란 상실과 좌절을 겪으며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누구인지,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그 질문을 거의 매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내게 ‘창작’은 어린 시절 아주 자연스럽게 하던 일이었다.
매일 인형놀이를 하고 만화책을 보며 공상 속에 지냈다.
하지만 성장하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느새 몸에서 잊혀진 감각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중년에 이르러 다시 만난 창작이
기약 없이 남아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나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기둥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다시 화해하고,
세상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상실과 좌절을 겪으며 내게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머금고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이든, 상상 속에서 태어난 일이든,
마음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음껏 펼쳐내는 것.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고,
때로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기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어쩌면 살아가며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