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앱을 만드는 시대, 집중해야 할 제품 유형
나를 위한 도구가 아닌, 세상 누군가를 위한 첫 제품을 고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지금은 빠르면 며칠 만에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계속 쓰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만드는지 판단하는 일: 약 80%
· 실제 구현: 5~10% (때론 1%)
· 고객 피드백·시장 변화에 따른 BM·정책·기술 튜닝: 나머지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다. Y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도 상당수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거나 전환한다. 유저들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첫 사용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바로 삭제한다. 대체제는 넘친다.
내 스마트폰을 열어 살펴봤다.
살아남는 제품은 크게 네 부류다. 하나의 제품이 여러 유형에 동시에 속하기도 한다.
1. 자산 Lock-In
갤러리, 드라이브, SNS처럼 사용자의 데이터·인맥·기록이 쌓일수록 빠져나가기 어려운 유형이다. 전환 비용이 높아지는 구조지만, 처음부터 높은 신뢰·안정성·보안이 필요하다. 1인 기업이나 초기 스타트업이 진입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2. 콘텐츠가 핵심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 Yes24처럼 유저가 앱을 여는 이유가 콘텐츠를 발견하고 소비하기 위해서인 유형이다. 방대한 양과 질의 콘텐츠를 지속 공급하는 역량이 승부처라, 자본력이 약한 팀이 정면 경쟁하기 어렵다. 단, 특정 장르·직업군·취향으로 범위를 좁히면 작지만 강한 시장을 만들 가능성은 있다.
3. 독보적 워크플로우
특정 사용자에게 반복적으로, 혹은 생에 단 한 번이라도 꼭 필요한 일을 기존 방식보다 압도적으로 잘 해결하는 제품이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워크플로우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이 시장이 작다고 외면하거나, 일반인은 모르지만 특정 고객에게는 절실한 니즈를 자신의 관심 분야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사용자가 시간·비용·불안 중 하나라도 기존 방식보다 분명히 줄어든다는 구체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전달할 유통 경로까지 확보해야 진짜 작동한다.
이 영역은 기존에 불편함을 참고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새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동시에,
앞으로 생겨날 워크플로우를 예측하는 일과도 연결된다.
기술, 제도, 노동 방식, 소비 습관이 변하면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업무와 불편이 생긴다. 가령, 생성형 AI의 확산, 원격 협업, 고령화, 규제 변화, 개인 창작자의 증가처럼 세상의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요약하면, 세상의 변화가 만드는 새로운 워크플로우를 먼저 예측해 작지만 확실한 타깃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이 영역도 시간이 지나면 수요가 커져 대기업이 따라오거나 플랫폼 기본 기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진입 초기부터 맥락 데이터 축적이나 고객 자산화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해자(moat)를 유지할 수 있다.
4. 범용 도구 (생산성/보조형)
메모, 녹음, 일정 관리, 저널 등. 특정 워크플로우에서 유용하지만 없어도 큰 지장은 없는 부류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빅테크의 업데이트 한 번에 순식간에 불필요해질 위험이 가장 크다.
단, 여기서도 길이 있다. '메모 앱'처럼 넓은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직업·상황·워크플로우에 깊이 맞춰진 도구라면 4번의 한계를 넘어 3번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 메모장이 아니라 '부동산 계약을 위한 체크리스트 도구', 'IT 프리랜서를 위한 정산 도구'처럼 맥락을 입히는 순간 대체 가능성이 낮아진다.
위 네 분류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기보다 겹친다. 도구가 자산 잠금효과를 만들기도 하고, 콘텐츠가 곧 독보적 서비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분류 자체보다도, 내가 지금 만들려는 것이 어떤 종류의 고착력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분명히 보는 일이다.
제품을 만들 때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다음에 더 가깝다.
- 누구의 문제인가?
- 그 문제는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가?
- 지금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 기존 방식이 왜 충분하지 않은가?
- 이 제품이 없어지면 사용자는 무엇을 잃는가?
- 사용자는 이 제품을 어디에서 발견하고, 왜 믿고, 어떻게 계속 사용하는가?
- 누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특히 작은 팀이나 1인 기업이라면 거대한 시장에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경쟁하기보다, 작더라도 문제가 분명하고 대체재가 약한 고객군을 찾아야 한다. 처음부터 큰 시장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문제를 매우 잘 해결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출발점일 수 있다.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시간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좋은 제품은 반드시 복잡하거나 거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충분히 절실하고, 기존 방식보다 분명히 낫고, 반복해서 사용될 이유가 있다면 작게 시작해도 된다. 문제는 제품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계속 사용될 만한 문제를 정확히 찾아내는 데 있다.